성과학 시리즈 ② 성과학의 발전

‘성과 생식이 분리가 가능한’동물인 인간에게 있어서 성과학의 발전은 매우 중요하다. 대부분의 동물은 일정 기간 동안만 가임기와 발정기가 있는 것과 달리 인간은 365일 내내 성적인 활동을 할 수 있다.^​1

그런 만큼 인간의 성은 복잡하고 영향력이 큰 영역이기 때문에 여러가지 학문을 통해 복합적으로 성과학이 발전되어 온 것으로 보인다.^​2

● 성과학의 학문 발전 기여

1. 의학과 성과학

성과학은 성병의 예방과 치료, 성기능장애치료, 임신과 출산, 성교육 등 의학에서 많은 영향을 기여했다.

예를 들면 성병의 원인과 증상, 경로, 치료법을 연구하기도 했으며 성기능장애 발기부전에 효과적인 약물을 개발하기도 했다.

2. 심리학과 성과학

성정체성, 성적욕구와 행동, 성폭력, 성희롱 등 성과 관련된 심리 치료의 발전에 큰 도움을 주었다.

성기능장애 또한 육체적인 문제 뿐만아니라 심리적인 요인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환자들이 많아, 성기능장애 치료에도 심리학이 큰 도움을 주었다.

그 밖에도 인류학, 생물학 등 여러가지 학문에서도 성과학이 성의 연구를 발전시키는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전 글에서 우리는 성과학이 어떤 학문인지, 실제로 사람들에게 무슨 도움을 제공하는지를 국내 성과학에 대한 태도와 함께 알아보았다.

이번 글에서는 성과학이 인류와 함께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를 알아보도록 하자.

●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전 부터 있었던 성과학

성과학의 발전 과정은 인류의 발자취처럼 아주 길고 복잡하다. 성의 역사가 깊은 만큼 관련 학문인 성과학 역시 끊임없이 연구되어왔다.

초기에는 주로 종교적 신념으로 인해 성이 신성하게 여겨지거나 금기시되는 죄악으로 여겨졌기에 인간에게 있어 성관계는 다른 대부분의 동물들처럼 출산을 위한 목적으로만 허용되는 경우가 많고, 보수적인 이미지가 강했지만 성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은 여전했다.

1. 고대의 성과학

소녀경은 중국 고대 주나라 때 작성된 의학서인 황제내경 중 하나로 성과 관련된 수련법인 방중술을 기반으로 인간의 여러 질환을 다스리고 생로병사를 풀이한 서적이다.^{​3, 4}

소녀경은 서적의 법도를 잘 수행하면 성생활을 통한 쾌락, 건강, 장생도 함께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350년경 인도의 바쨔야나가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카마수트라는 힌두교 교리를 바탕으로 인간의 성에 대한 모든 것을 전반적으로 다룬 서적으로 현대 성과학과 매우 유사한 부분을 나타내고 있으며 실제로 성교육 교재로 이용되기도 했다.^​5

사람 사이의 사랑의 특성과 생활의 기쁨을 추구한다는 본래의 의미와 달리, 현대에서 ‘카마수트라’의 의미가 변질되어 사용하고 있는 경우가 많고, 단순한 체위 설명서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단순한 성행위 지침서가 아니라 행복 지침서, 성적 본능의 욕망을 통한 육체적, 정신적, 영적인 만족을 얻을 수 있는 방법 소개서라고 말할 수 있다.

2. 성과학의 본격적인 발전, 19세기

성과학은 19세기부터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19세기 심리학자 Heinrich Kaan의 저서 Psychopathia Sexualis(1844)의 출간으로부터^​6 영국의 성학자인 Havelock Ellis에 의해 자위와 동성애에 대한 연구와 심리학적 개념의 발제로 이어진다.^​7

성학을 심리학적 관점에서 더 발전시킨 것은 신경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인 지그문트 프로이드다. 프로이드는 인간의 심리 발달을 성적 발달과 연결시켰으며, 각각의 단계를 구강기-항문기-남근기-잠복기-남녀 생식기로 정의했다.^{​8, 9}

이와 비슷한 시기인 1908년에 최초 성학 학술지인 Journal of Sexology가 출간되었다.^​10 이로 인해 유럽권에서 성학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했고, 성기능과 기능 장애의 심리적∙생물학적 연구를 다룬 내용을 담은 지금의 The Journal of Sexual Medicine에 이르었다.

3. 2차 세계 대전 이후의 성과학

2차 세계 대전 이전의 성과학은 해부생리학과 기초의학이 잘 발달되지 않아 주로 심리학적 접근을 많이 했다. 정신적인 분석만으로 성에 대한 접근을 했을뿐더러 여러 설문과 인터뷰가 상당히 보수적이고 차별적인 시선이 강했기 때문에 조사 결과에서 많은 오류를 범했다.

하지만 2차 세계 대전 종식 이후 종군자, 참전자와 그의 유가족들의 심리치료에 섹스테라피 필요성이 나타나면서 성과학에 대한 연구가 대폭 일어나기 시작했다.

또한 미국 이민자가 급수적으로 늘면서 성적으로 자유로워지고 상업적인 발달을 이루면서 성에 대한 직접적인 분석으로 확장되기 시작했다.

① 남녀 성반응 리포트, Kinsey report

이런 분위기에 편승한 Alfred Kinsey 박사는 성학 연구에 큰 반향을 일으키게 된다. 1947년 미국 인디애나 대학교에 Institute for Sex Research를 설립하고, 남녀 성반응에 대한 리포트 Kinsey report를 발표하며 근대 성학의 기틀을 잡았다.^​11

단, Kinsey report는 당시 성반응에 대한 객관적인 기준도 없었을뿐더러 킨제이 박사의 개인적인 편견과 견해도 많이 포함되었고, 단순한 인터뷰 형식의 연구였기에 여성들의 솔직한 의견이 잘 드러나지 못했다. 그 결과 여성이 남성에 비해 성적으로 덜 활동적이고 성욕이 적다는 치명적인 오류가 나타났다.

② John Money 박사

1950년대 심리학자이자 성학자인 John Money는 성정체성*과 지향성*, 각종 페티쉬나 BDSM 성향에 속하는 paraphilia의 정의와 섹스 라이프를 좌우하는 body image*, love map*의 이론을 정립한 업적을 세웠다.^{​12, 13}

*성정체성(Gender Identity) : 성적 정체성에 대한 스스로의 정의. 생물학적 성(sex)과 사회적 역할, 행동 방식, 심리적 정체성(gender)를 각각 정의함. 예) 시스젠더 여성, FTM 트랜스젠더 남성 등

*성지향성(Sexual Orientation) : 자신이 성적 혹은 로맨틱하게 이끌리는 대상을 칭함. 대상에 따라 heterosexual(이성애), homosexual(동성애), bisexuality(양성애), pansexual(범성애), asexuality(무성애) 등으로 나뉜다.

*body image : 자신의 외모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보고 평가할 것인가에 대해 '자기 마음대로 믿는' 내용이자 허구적 믿음. body image는 성적 욕망, 성적 흥분, 오르가즘에 미치는 영향이 큼. 특히, 여성에게 미치는 영향이 큼. 외모에 대한 평가가 만연한 우리나라는 그만큼 부정적인 body image가 형성되기 쉬움.

*love map : 대략 6-8세에 뇌에 각인되는 ‘연인과 성적 대상자에 대한 이상형의 틀’과 이를 기반한 심리적 발달. 이때 각인된 이상형의 가치 등이 평생을 좌우함.

③ Masters 와 Johnson박사의 성반응 그래프

산부인과 전공 William H. Masters 박사와 심리학 전공 Virginia E. Johnson 박사는 여성 382명과 남성 312명을 대상으로 실험실에서 직접 관계를 하게 하여 섹스로 인한 신체 변화를 과학적으로 처음 측정했다.

이를 통해 현재까지도 쓰이고 있는 인간의 성반응 단계 흥분기, 고조기, 절정기, 이완기를 정립했다.^{​14, 15}

인류 역사 최초로 실제 지원자를 모집하여 과학적으로 접근한 건 대단한 업적이지만, 백인 남녀 부부로만 구성한다던가 여성 지원자 대부분이 성 노동자였다는 점 등 설계에 몇 가지 제한점이 있어 이 실험 결과 역시 오차를 범했다.

● 성과학의 지금 모습은?

1980년대 전 세계적으로 퍼지기 시작한 HIV(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에 대한 연구로 의학적인 발전이 더욱 가속화 되었다.^{​16, 17}

21세기에 들어선 분자생물학, 신경과학, 피부과학, 내분비학, 뇌과학, 유전공학 등의 기초 생명과학과 fMRI*, PET*, live cell neuroimaging*, two photon microscopy*등의 분석 장비의 발달로 인간의 성행위 시 신체 성반응을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게 되었다.^​18

*fMRI : 기능성 자기공명영상은 혈류와 관련된 변화를 감지하여 뇌 활동을 측정하는 기술. 성적 자극에 대한 뇌의 성반응을 살피는 도구로써 주로 사용함.

*PET : 양전자 방출 단층촬영은 양전자를 방출하는 방사성의약품을 인체에 투여하여 생리•화학적, 기능적 영상을 3차원으로 표현하는 영상검사입니다. 뇌 기능 평가를 위해 PET검사를 시행할 수 있음.

*live cell neuroimaging : 살아있는 신경세포를 형광물질 등으로 염색하여 신경전달물질 등에 의한 신경세포의 생리학적인 반응을 실시간 영상으로 측정하는 기술.

*two photon microscopy : 이광자 현미경은 에너지가 적은 근적외선 광자 2개를 시료에 쪼아 생체 시료에 부담을 적게 주면서 관찰을 하는 기법이자 장비. 근적외선 광자를 사용하기에 살아있는 조직을 투과할 수 있으며, 장시간 동안 관찰이 가능하기에 생명 현상을 실시간으로 3차원 영상으로 제공 가능함.

또한 차별적인 시선과 편견이 존재했던 과거와 달리, 심리과학의 발달과 성적 다양성의 존중과 포용 그리고 인권과 성권리 신장으로 이상 성욕으로 분류 되었던 것들이 취향으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때문에 관련 연구도 오차를 범하지 않고 더 정확한 결과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성과학은 섹슈얼리티에 대한 전반적인 것을 과학적으로 연구하고 가르치는 학문으로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누구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엄연한 학문이다.

하지만 성심리상담, 섹스 컨설팅 같이 포괄적인 실적 성교육에 대한 대중의 접근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고 아직까지 섹스 콘텐츠나 성 관련 용품에 대한 규제도 많아 대중이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우리나라는 비록 성과학 발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전편에서 다룬 것 처럼 대한성학회를 비롯해 국내 곳곳에서 대중의 성을 위해 활약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인퓨즈랩의 진태원 연구소장 또한 성학회의 일원으로서 적극적인 해결책과 도움을 제공하고 있다.

성에 대한 인식이 많이 변화한 만큼, 해외처럼 정식 학문으로 등록되어 성과학이 학문적으로 더 원활하게 연구될 수 있기를 바란다.

[참고 자료]

1. Janet Shibley Hyde, John D. Delamater, Understanding Human Sexuality 13th edition, McGraw-Hill Publishing, 2017, ISBN13: 9781259544989

2. Johnson, Mark, "Anthropology and Sexology". The 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Human Sexuality, 2015, 1–111. doi:10.1002/9781118896877.wbiehs033. ISBN 9781118896877.

3. “TAO OF SEXOLOGY: SEXUAL WISDOM AND METHODS - Tao Longevity LLC”.

4. 완역 황제소녀경, 최창록, 김윤태, 도서출판 선, ISBN 9788963120324

5. 카마수트라, 바쨔야나 저, 정태혁 역, 동문선, ISBN 8980377834

6. Michel Foucault, Abnormal: Lectures at the Collège de France, 1974-195 (Picador, 2003)

7. Storr, Meryl (1999). Storr, Merl (ed.). Bisexuality: A Critical Reader. London: Routledge. doi:10.4324/9780203024676. ISBN 9780203024676.

8. J. Laplanche, J.B. Pontalis, The Language of Psycho-analysis. 1998, Karnac Books. p. 45. ISBN 9780946439492.

9. Three Contributions to the Theory of Sex by Sigmund Freud - Free Ebook. gutenberg.org. 2005-02-08.

10. Haeberle, E. J., The birth of sexology: A brief history in documents., 1983. World Association for Sexology.

11. Alfred C. Kinsey, Clyde E. Martin,  Wardell B. Pomeroy, Sexual behavior in the human male. New York and Philadelphia: W.B. Saunders. p. 3. OCLC 705195970.

12. Milton Diamond, H. Keith Sigmundson, "Sex reassignment at birth: long-term review and clinical implications”, 1997, Archives of Pediatrics & Adolescent Medicine. 151 (3): 298–304.

13. Milton Diamond, "Sex, gender, and identity over the years: a changing perspective”, 2004, Child and Adolescent Psychiatric Clinics of North America. 13 (3): 591–607,

14. W.H Masters, V.E. Johnson, Human Sexual Response, 1966, Toronto; New York: Bantam Books. ISBN 978-0-553-20429-2. 1981 edition ISBN 978-0553204292.

15. W.H Masters, V.E. Johnson. Human Sexual Inadequacy, 1970, Toronto; New York: Bantam Books. ISBN 978-0-553-20699-9.

16. John H. Gagnon, "Sex research and sexual conduct in the era of AIDS". Journal of Acquired Immune Deficiency Syndromes, 1988, 1 (6): 593–601.

17. Jennifer Oriel, "Sexual pleasure as a human right: Harmful or helpful to women in the context of HIV/AIDS?”, 2005, Women's Studies International Forum. 28 (5): 392–404